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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정보 -

사랑이 기적이라 불리는 이유

by ★☞마이크로프레젠트 †♭ 2023. 3. 9.


남자는 북극의 생태계를 연구하는 과학자였다.
여자는 이동통신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무원이었다.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졌다. 교제를 시작한 지 1년쯤 지났을 때 여자는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자신은 13살 때부터 당뇨병을 앓고 있으며 남자에게 짐이 되는 게 싫다는 것이 이유였다. 남자의 대답은 ‘함께 이겨내자.’였다. 며칠 뒤, 남자는 여자에게 프러포즈했다. 이 이야기는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북쪽으로 4시간 거리에 있는 러시아의 야쿠츠크에서 시작된다.


러시아에서 온 편지 - 알렉산더와의 대화
우선 제 소개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이름은 알렉산더 코노노브입니다. 생태학 전공의 과학자로 러시아 과학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2011년 말, 저희 부부에게는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제 아내 타티아나의 건강상태가 그야말로 최악이었거든요. 더욱 절망적인 사실은 어느 곳에서도 그녀의 병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아산병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타티아나의 상태를 자세히 적어 그곳에 보냈습니다. 며칠이 지나 희망적인 답을 들었습니다. 그즈음 혼자서는 걸을 수 없을 만큼 타티아나의 건강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우리에겐 한국으로 가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온 위기의 부부 
타티아나 씨가 몸에 이상을 느낀 것은 결혼하고 3년 만인 2011년. 당뇨 합병증으로 투석을 시작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그녀는 생과 사를 넘나들고 있었다. 남편 알렉산더 씨는 그런 아내를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과학자답게 아내의 병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모아둔 자료와 도서관에서 빌린 의학 책을 쌓아놓고 읽었다. 그리고 신장 이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녀의 아버지, 니콜라이 씨가 기증자로 나섰다. 알렉산더 씨는 러시아 내에 신장이식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연락했다. 기증자와 수혜자 간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아 신장이식을 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외국으로 눈을 돌려 미국과 유럽의 병원 몇 곳에 연락해 보았다. 그들 역시 수술의 위험성, 법적인 문제를 이유로 거절했다. 절망에 빠져 있다는 그의 소식을 듣고 오랜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울아산병원에 연락해 보는 것이 어떻겠나?”


그는 즉시 서울아산병원 대외정책팀의 빅토리아 씨에게 메일을 보냈다. ‘수술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빅토리아 씨는 한국에서 장기이식수술을 받기까지 필요한 서류를 직접 러시아말로 번역하고 공증받아 부부에게 보내 주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입원에 필요한 절차가 수월하게 진행됐다. 드디어 2012년 3월 5일, 그의 가족이 한국에 도착했다.


병원에 머무는 동안 알렉산더 씨와 타티아나 씨는 말 그대로 104병 동의 닭살 부부였다. 알렉산더 씨는 러시아어 외엔 한마디도 못하는 아내의 침대 옆을 24시간 지키고 있다가 불편한 일이 생기면 슈퍼맨처럼 빠른 손놀림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틈틈이 인터넷에 타티아나 씨의 치료 경과를 적어 사람들에게 그녀의 소식을 전했다. 알고 보니 한국에 오기 전, 그는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모금활동을 벌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그마치 그의 10년 치 월급보다 많은 돈이 기부금으로 모였단다. 사랑의 모양은 참으로 다양하다.


또 다른 사랑, 아버지…
사실 신장이식을 한다 해도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췌장을 이식하면 인슐린을 끊을 수 있습니다.’ 한덕종 교수가 그들에게 신췌장 동시이식에 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신장이 두 개인 것과는 달리 췌장은 하나다. 생체 이식을 위해선 하나의 췌장을 일부 나누어야 한다.

설명을 마치고 모두 기증자 니콜라이 씨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통역을 담당하던 빅토리아 씨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빅토리아 선생님! 뭐라고 하시나요?” 의료진의 재촉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눈망울이 촉촉했다. “설령 제 목숨이 위험해진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딸이 건강해질 수 있다면 제 인생 전부라도 주고 싶으니까요.” 아버지의 단호한 표정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의 굳은 의지에 힘을 얻어 의료진은 췌장 이식 적합 여부를 보기 위한 검사에 들어갔다. 이틀 동안 무려 20차례에 걸쳐 혈액을 뽑는 과정에서도 예순을 넘긴 니콜라이 씨는 조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2012년 5월 11일, ‘혈액형 부적합 췌장-신장 동시이식’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타티아나 씨는 낯선 땅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얻고 다시 태어났다.


러시아에서 온 두 번째 편지
답장이 늦어서 미안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지내는 지 궁금하다고 물었죠? 러시아로 돌아온 이후에도 우리는 한덕종 교수님께 러시아 병원에서 받은 검사 결과를 정리해 이메일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주 전문적인 조언을 적어 보내주십니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늘 곁에서 진료를 받는 기분입니다. 끝까지 책임져 주시려는 모습에 늘 감동받습니다.


기적, 24년 만의 화려한 외출
2013년 7월의 어느 날, 타티아나 씨가 한국을 다시 찾았다. 이번이 벌써 그의 세 번째 한국 방문이다. 일 년에 두 번씩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아와 몸 상태를 점검한다. 수술로 얻게 된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자유다. 이식 전, 복막투석을 받아야 했던 그녀의 옆엔 늘 무거운 투석액이 짝꿍처럼 붙어 있었다.

이제는 하루에 두 번, 약만 잘 복용하면 된다. “제 인생의 가장 큰 기적은 비로소 보통 사람처럼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다음 인슐린 주사 시간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것이 가장 기뻐요. 만약 남편이 없었다면 이런 생활은 아마 평생 꿈도 꾸지 못했을 거예요.” 이야기하는 내내 그녀의 눈빛이 왠지 들떠 보였다. 다음 목적지가 어딘지 물어보니 역시나 진료를 마치면 바로 제주도로 여행 갈 예정이란다.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리는 것만큼 놀라운 기적이 있을까? 자신의 수고와 노력 그리고 인생 전부를 걸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일처럼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 부부에게 일어난 아름다운 기적은 많은 이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 때로는 기적이라고도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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