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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정보 -

헬리코박터 균의 발견과 소화성궤양에 미치는 영향 규명

by ★☞마이크로프레젠트 †♭ 2023. 2. 6.

 

‘한번 궤양이면 평생 궤양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보통 십이지장궤양이 20~30대에 발병하므로 젊었을 때 시작된 반복적인 속 쓰림이 나이가 들어서까지 재발된다는 의미다. 십이지장궤양과 위궤양은 둘 다 소화성궤양으로 불리지만 발병 기전과 치료법이 다르다. 십이지장궤양은 위산 과다로 인한 십이지장 구부 점막의 결손이 원인이므로 위산을 줄여주거나 중화시키면 증상이 개선되고 치유된다. 반면 항상 위산으로 가득 찬 위에서 발생한 위궤양은 위산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위 점막 하층의 혈액순환 장애가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헬리코박터 감염은 두 질환 모두에 큰 영향을 준다. 감염 초기 위 하부에 위염이 생겨 강력한 위산분비 호르몬인 가스트린의 양이 많아지고 정상 위 체부에서 다량의 위산이 배출돼 십이지장궤양을 일으킨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염된 위 점막의 형태가 점차 변형되고 생리 반응이 소실되며 정상적인 방어기전에 와해를 초래해 항상성이 파괴되면서 위궤양이 발생한다. 헬리코박터 감염을 초기에 치료하면 소화성궤양 발생 확률이 크게 낮아지며 질병 발생 후 제균하더라도 치료 후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된다. 헬리코박터 감염은 십이지장궤양 환자의 73~100%, 위궤양 환자의 65~100%에서 관찰된다. 제균요법 후 십이지장궤양의 재발은 67%에서 6%로, 위궤양 재발은 59%에서 4%로 감소했다고 한다. 매우 획기적인 치료법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1979년 호주의 병리학자 존 로빈 워런 박사는 나선형 균을 위 조직에서 발견했다. 1972년까지는 부검 표본이나 수술 후 표본은 여러 이유로 점막층이 손상된 상태로 의뢰되기 때문에 점막층의 변화는 자세히 관찰하기 불가능했다. 그러나 1973년 이후로 내시경 생검법이 확립되면서 신선한 조직을 파라핀에 고정해 위점막을 잘 관찰할 수 있게 됐고, 심한 염증 소견이 동반된 위점막에서 나선형 세균을 처음으로 관찰했다. 워런 박사는 전자현미경 관찰로 나선형 세균의 존재와 위점막세포와의 관련성, 위벽에서의 염증 반응을 확인했다. 헬리코박터 세균은 정상적인 위 점막에서 주로 관찰되며 주변 위 점막의 표층에 가벼운 염증이 동반되어 있다. 그러나 점액의 양이 적거나, 위축성 변화가 있거나, 급성 염증 반응이 심한 곳에서는 관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학계에 정식으로 발표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강력한 위산으로 차있는 위 안에서는 어떤 세균도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병리학회에서 무시당했다.

워런 박사와 배리 마셜 박사의 만남은 서로에게 매우 큰 행운이었다. 마셜 박사는 1979년 호주 왕립퍼스병원에서 내과 펠로우를 했는데 소화기내과에서 로테이션을 돌던 1981년 운명처럼 워런 박사를 만나 우리네 세균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아무도 워런 박사의 발표를 믿지 않는 가운데 소화기내과 의사인 마셜은 관심을 갖고 헬리코박터 감염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고 1984년 드디어 헬리코박터 감염이 소화성궤양의 원인임을 증명하게 된다. 이 위대한 발견 이전에는 우연한 발견이 함께 하는 행운이 따랐다. 마셜 박사는 워런 박사와 연구를 시작했으나 세균을 직접 배양하는 데 반복적으로 실패하던 중 실수로 세균 배양기를 청소하지 않은 채 여름휴가를 다녀왔는데, 쌓여있는 배양용기를 버리는 도중 작고 투명한 새로운 균 집락(colony)을 발견하게 된다. 실로 엄청난 우연한 발견이었다. 이 행운으로 인하여 헬리코박터 세균은 배양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는 것이 밝혀졌고 다른 세균에 비하여 조금 더 오래 배양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워런 박사와 마셜 박사는 소화성궤양 환자의 정상적인 위 점막에서 헬리코박터 세균이 있음을 확인했다. 마셜 박사는 세균을 배양하기 위한 배양 조건도 알게 되었으며 배양된 세균을 직접 먹어서 자신의 위에 감염시켰고 내시경을 통한 조직 생검에서 세균 감염을 확인했다. 다음 단계는 치료법 개발인데 자신의 위에 감염 시킨 후 당시에 사용이 가능한 항생제를 한 가지씩 복용했으나 치료되지 않았고 여러 가지 항생제를 한꺼번에 복용해야 치료될 수 있음을 몸소 알게 되었다. 헬리코박터 감염 소화성궤양 환자에게 복합 항생제를 투여함으로써 궤양의 치료는 물론 재발 방지에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결핵균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지 100년 만에 헬리코박터 세균 연구자가 노벨상을 받게 된 것이다. 세균 배양법은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그 이후 자신의 몸을 던져서 세균 감염을 증명하고 치료법을 찾아낸 것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소화성궤양 재발의 고리를 끊어내는 매우 큰 발견이었다.

이후 많은 연구들이 진행돼 헬리코박터와 위암 발생의 연결 고리를 발견하여 1994년에 국제암평의회에서 헬리코박터를 제1형 발암인자로 명명하게 된다.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는 만성 재발성 소화성궤양 치료 및 예방뿐 아니라 위암의 발병을 줄이는 암 예방 전략에도 응용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2013년부터 헬리코박터에 감염된 전 국민에 대하여 제균치료를 시행함으로써 ‘위암 없는 일본을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슬로건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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